센소지 절에 대하여
관음상을 건져올리는 어부들(센소지 간분엔기 두루마리 그림에서)
관음상을 건져올리는 어부들(센소지 간분엔기 두루마리 그림에서)
센소지의 유래와 역사
일본의 수도가 아스카(현재의 나라현)에 설치되어 있던 628년 3월 18일 이른 아침, 아사쿠사의 어부 히노쿠마 하마나리와 다케나리 형제는 스미다가와 강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밑에 무언가 걸려서 건져올려 보니 그것은 관음상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사쿠사의 관리 하지노 나카토모는 이 불상을 보자마자 그것이 불교도들에게 소중한 성 관세음보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성 관세음보살을 믿기로 굳게 결심한 나카토모는 출가를 하여 자택을 절로 개수하고 성 관세음보살 신앙에 평생을 바쳤다. 645년, 여행을 하고 있던 승려 쇼카이(勝海)가 이곳을 찾아와 관음당을 건립하였다. 쇼카이 스님은 꿈 속에서 받은 계시에 따라 성 관세음보살상을 사람들 눈에 띄게 해서는 안 되는 비밀 불상으로 정했으며, 이후 오늘날까지 이 약속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광활한 무사시노 들판의 한쪽에 자리하여 도쿄만 어귀의 보잘 것 없는 어촌에 지나지 않았던 아사쿠사는 참배객들이 증가함에 따라 발전을 거듭하였다. 9세기 중반에 불교 종파의 하나인 천태종의 총본산 엔랴쿠지(延曆寺) 절의 최고위 승려인 엔닌(794~864)이 센소지를 찾아 비불(秘佛)과 똑 같은 모습의 불상을 보고 참배할 수 있는 불상으로 제작하였다. 가마쿠라시대(1192~1333), 당시 일본의 실질적 지배자인 장군들로부터 두터운 신앙을 받고 있던 센소지는 그 밖에도 역사상 유명한 무장이나 문인들로부터도 점차 신앙을 받게 되었는데, 그들의 보호 아래 센소지의 건조물은 더욱 멋지게 정비되었다. 에도시대(1603~1867)에 들어서자, 에도막부의 초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센소지는 막부의 기원을 올리는 절로 지정되었다. 사원의 건물들은 더욱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고, 에도 문화의 중심으로서 크게 번창하였다.
이렇게 도쿄 최고의 사원인 센소지 절은 '아사쿠사 관음'이라는 애칭으로 모든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연간 약 3,000만 명의 참배객들이 찾아오는 민중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것이다.

photo
엔닌이 조각한 관음상(센소지의 사보)
엔닌이 조각한 관음상(센소지의 사보)
자비의 부처님인 관세음보살(관음)
관음은 많은 부처 중에서도 가장 자비로운 부처로서,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 그 괴로움을 없애주고 소원을 빌면 평온함을 베풀어 준다.
특히, 센소지의 본존인 성 관세음보살의 은혜와 영험은 비할 데가 없으며, 이 세상에 오신 후 오늘날까지 1,400년 가까이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지켜왔다.
관음 신앙이란 즉, 관음으로부터 '자비'의 마음을 배우고 자신도 그와 같이 사는 것,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당을 참배할 때는, 합장을 하고 '나무 관세음 보살'이라고 외웁시다.


당 웹사이트에 게재된 사진이나 삽화 등을 무단으로 전사, 복제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c) 2008~센소지 all rights reserved